Travelog - T018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 D+353
Travelog
2016.05.24 13:18:52
2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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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저니, 스테이시


세계 1위 바나나 생산국


적도의 나라로 넘어가는 날.

자전거로,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섬 아닌 섬나라 한국인에게 언제나 신선함을 준다. 

판아메리카 노르테(Panamericana Norte)의 프론테라(Frontera, 국경) 선상엔 에콰도르-페루 양국 간 국경 심사가 통합 운영되고 있었다. CEBAF(Centros Binacionales de Atención en Frontera)라 일컫는 출입국 단일화 시스템으로, 입국하는 나라(우리의 경우엔 에콰도르)에서 이전 국가 출국 신고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어 매우 간편했다. 입국심사장을 나오자 마치 우리를 반겨주듯 에콰도르 대형 국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이제부터 에콰도르, 적도를 달린다. 싱그러운 초록빛과 기분 좋은 촉촉함, 더 이상 먼지는 날리지 않았다. 


"저니, 그거 알아요? 

 에콰도르가 세계 1위 바나나 생산국이란 사실."



말로만 듣던 바나나 플랜테이션 지대가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저니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와... 세계 최대 바나나 생산국, 검증은 순식간에 끝났다. 바나나 밭을 좌우로 나눈 아스팔트는 오직 바나나 농사와 유통을 위한 것이고, 오고 가는 사람은 모두 일꾼들로 보였다. 짐칸을 가득 채운 트럭은 모두 바나나를 실어 나르는 것 같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바나나 밭. 


"엄청 넓다. 호남평야 달리던 그때가 생각나네."  



2008년 여름의 일이다. 첫 자전거 여행으로 해남 땅끝 마을을 가던 중이었다. 국도변 좁은 갓길에 웬 유리 조각이 그리 많은지. 수 차례 펑크 소동이 있은 후, 피곤과 짜증이 밀려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지방도로로 빠져나왔고, 우연히 들어선 시골길에서 황금 들판을 만났다. 우리나라 제일의 곡창지대라 불리는 호남평야였던 것이다. 


"벼는 키가 낮아서 주변 평야지대가 훤히 보였는데 여긴 완전히 다르네요" 



농장 규모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그걸 안다면 지루한 평지 라이딩의 끝을 가늠할 수 있을 텐데. 몸집이 큰 바나나 나무로 빽빽이 들어선 평야는 폭도 길이도 알 수 없다. 이따금 고랑 사이로 일꾼들이 보였다. 


"저니 여보, 저것 봐요! 자루 통째로 봉지를 씌우고 있어요. 옛날 과수원 할 때 사과 봉지 씌우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 꼭지 쪽 마무리가 어려워 빵끈이 있었더라면 했는데, 이듬해에 빵끈이 삽입된 봉지가 나왔지 뭐예요! 얼마나 기뻤다고요. 봉지를 안 씌우면 깐챙이가 잘 익은 사과들만 골라 콕콕 찍어 먹는대요."


"깐챙이?"


"네 깐챙이. 시골에선 까치를 깐챙이라 불러요. 가을이 돼서 사과를 따잖아요. 봉지 씌운 것들은 골고루 색이 잘 났는데, 참 신기했어요. 그렇잖아요, 햇볕도 안 보고 어찌 그리 발갛게 익느냔 말이에요." 



봉지를 씌우는 일꾼 외에 마체타(macheta, 날이 매우 강하고 긴 칼의 일종)로 말라비틀어진 잎들을 정리하는 일꾼도 보였다. 한편, 밭 언저리 널찍한 공터에선 수확한 바나나 자루를 연신 물에 담갔다 빼는 작업으로 바빴다. 무슨 약품처리를 하는 모양인데 멀리 수출하기 위한 듯했다. 그리고 농장 한편에 있는 항공기 한대. 한 눈에 봐도 그건 농약 살포용이 분명하다. 실로 엄청난 규모의 바나나 밭, 그곳에 뿌려댈 농약의 양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비닐봉지를 바나나 자루 통째로 빙 둘러 씌운 이유가 농약으로부터 과일을 보호하려는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관행 농업을 하시는 부모님도 농약을 쓴다. 안 쓰는 것이 몸에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식품을 넘어 '상품'을 요구하는 시장에서는 농약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에 처해있다. 자본주의 속에 상품으로써 인정받으려면 모양도 좋고 생산성도 높아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이뤄진 무언의 계약은 정작 사람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잊게 만든다.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는 일. 우리 여행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화난 원숭이는 어디로 갔을까?


바나나 농장 한 가운데서 문득 원숭이 실험 하나가 생각났다. 게리 하멜과 C.K 플라할라드 교수의 논문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실험자는 원숭이 우리 천장에 바나나를 매달아 놓았다. 우리 속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먹기 위해 위로 오르자 실험자는 찬 물을 뿌린다. 원숭이들은 수차례 시도를 하지만 번번이 물세례를 받고 바닥에 떨어졌다. 실험자는 우리 속 원숭이 한 마리를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참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으려고 줄을 오르자, 고참 원숭이들이 화를 내며 그를 제지한다. 신참이 올라가서 바나나를 건드리면 자기들도 자동으로 물을 뒤집어쓰게 되기 때문이다. 위축된 신참 원숭이는 더 이상 시도하려 들지 않았다. 실험자는 계속해서 원숭이를 교체해 나갔다. 이제 우리 속에는 물세례를 직접 경험한 원숭이는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원숭이도 바나나에 접근하려들지 않았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면서 바나나는 그저 '따먹으면 안 되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과연 원숭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현대사회에선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별로 중요해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값싸고 빨리 한 끼 때워야 할 대상일 뿐이다.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옳고 바르게 바꿔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귀농을 생각하는 우리는 끊임없이 딜레마에 빠지고 고민하게 된다.  


바나나 농장 사이로 강렬하게 내려쬐는 태양 아래 화난 원숭이가 된 저니가 물었다.


"스테이시! 태양을 꼭 만져봐야 뜨거운지 알아?!"

"그럼요? 안 만져보고 어찌 알아요?"



우리가 길 위에선 이유. 끝없이 헤매고 헤매자. 세계를 직접 보고 느끼자. 



약속의 도시 과야킬


어느덧 위도는 2도(리마 12도). 적도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기후 또한 많이 달라졌다. 새벽 일찍 나서야지 땡볕 무더위 속 라이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아침해가 고도를 높일수록 바나나 나무 그늘은 점점 짧아지고 온몸으로 직사광선을 받는다. 얇은 자전거복은 열기를 그대로 흡수했다. 그 탓에 스테이시 허벅지가 벌겋게 익었다. 여행에 앞서 응급처치 수료 때 들었던 내용, 그것은 열화상이었다. 약국에서 처방받은 유아용 화상 연고를 두껍게 펴 바르고 숙소에서 일찌감치 쉬었다. 아침 먹을 것과 비상식량 등 주전부리를 사러 나간 저니. 돌아온 그의 표정이 좋지 않다. 


"맥주를 못 샀어. 일요일은 술을 안 판대. 페루가 좋았어 ㅠ.ㅠ

  담배도 비싸고 끊어야 할까 봐. 달러 쓰는 곳이라 그런가. 물가가 높아. " 



닷새가 지나도록 바나나 밭은 끝날 기미가 없다. 거대 숲을 빠져나와 약속의 도시 과야킬(Guayaquil)로 향했다. 열흘 후면 미국에서 우리 친구 애버리(Avery)가 온다. 그때까지 할 일이 많다. 농장 물색, 여행기 작성, 그리고 바이올린 연습. 오래된 아파트 1층 구석에 위치한 독립형 원룸을 구했다. 볕이 부족한 흠이 있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았다.  


우프 에콰도르. 농장 수도 적고, 우리가 바라던 소규모 전업 바나나 농장도 없다. 특이한 것은 타지 출신, 주로 유럽인 귀촌이 과반수 이상이란 점으로, 그중 몇몇 농장의 요구사항은 유별났다. 열대 우림 지역이라 준비물도 많고, 생태림 보호란 이유로 생분해성 비누를 챙겨 와야 한다는 곳도 여럿이었다. 에콰도르 우핑이 쉽지 않아 보였다. 농장 목록을 재검토하고 몇 군데 골라 이메일을 보냈다. 며칠 좀 기다려 보자. 


숙소엔 주방이 있어 꼬박꼬박 집밥을 해 먹어 좋았다. 하루는 고기를 굽고 중국 배추를 구해서 마지막 남은 고추장 맛을 즐겼다. 남미에 골고루 퍼져있는 중국인 덕분에 중국 식자재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한식 재료, 특히 고추장이나 간장은 북으로 갈수록 구하기가 힘들었다. 키토쯤 가야 한인 상점이 있다고 하는데 중미로 건너 가면 더욱 어려울듯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소금으로만 맛을 낸 심심한 채소 볶음밥이라도 집밥이라면 그저 좋다는 저니가 스테이시는 고맙다. 


어느 저녁엔 주인아주머니께서 오셨다. 케이크를 구워야 한다며 오븐 좀 쓰자고 여쭈시는데 한국인의 정서라면 다 저녁에 주방을 쓰러 세 준 집에 가려고 할까? 그리고 만든 음식을 나눠야 할 것 같은 부담은 또 어쩌고. 이곳 사람들은 우리와는 달랐다. 부탁하는 태도는 당당하였지만 뻔뻔스럽지 않았고, 그이가 주방을 쓰는 두 시간 내내 불편한 맘은 없었다. 눈치를 볼 일도 줄 일도 아니었으니 당연할지도. 구운 케이크를 꺼내 가며 더운 날 미안하다 하는 그이에게 진심을 담아 답했다. 


'조금 더웠지만 괜찮아요.' 





내 친구 애버리


애버리(Avery, 미국인)를 알게 된 것은 2011년 한 스타트업이 만든 서비스를 통해서였다. 전 세계의 서비스 이용자 중 무작위로 한 명을 연결하고 일주일이라는 제한 시간을 준다. 서로의 관심사를 끌어내기 위해 시스템은 특정 질문들을 제시해주는 방식이었다. 얼굴을 모른 채 서로의 나라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도 어설픈 영어로. 간간히 스테이시의 영어 도움을 받으며 저니는 애버리에 대해 알아갔다.  일주일간 애버리의 대학생활이며 가족 이야기, 경제 대국 미국에도 굶주리는 아이가 많다는 얘기 등. 미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물론 영어학습에 대한 목적도 생겨갔다. 


글자에 의지해서 소통하는 단편적인 대화. 얼굴의 미묘한 감정이나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그 단편적인 글 속에서도 흔히 말해 '통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부부도 그 온라인이 이어준 인연이니까. 한국영화 '접속'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들었어요...'



우리 그렇게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후에도 우린 계속 연락하며 지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가고 이듬해, 애버리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커다랗고 맑은 눈, 넓은 이마에 마른 체구, 진지하면서도 엉뚱하기도 한 20대 젊은 미국 여자 아이였다.   


우리는 그녀에게 민속촌과 한국음식을 소개했고 그녀는 한국의 대학 교정에서 미국식 피크닉으로 답례했다. 그때 당시 우리는 암투병 중이던 어머니 간병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 짧은 만남을 뒤로 한채 교환학생을 끝낸 애버리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며칠 후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드렸다. 


그로부터 2년 뒤. 뉴욕 용커스(Yonkers)에 있는 그녀는 우릴 집으로 우릴 초대했다. 처음으로 미국 현지인의 집을 찾은 우리. 거실 카우치를 펼치니 침대가 되었고 애버리의 가족과 함께 준비한 미국식 수제 햄버거와 옥수수 바비큐는 추억이 되었다. 맨하탄 관광 가이드를 자처한 그녀는 지독한 폭염 속에서도 '미디엄(보통)'이라며 미소를 짓으며 자유의 여신상을 소개했다.


어느덧 그녀는 직장인이 되었고, 휴가를 틈타 에콰도르에 있는 우리를 찾아 주었다. 그녀의 사촌 오빠, 필(Phil)과 함께였다. 상업 도시 과야킬은 더운 데다가 중남미 특유의 매력은 찾기 어려워 관광지로 인기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이유, 우리를 만나기 위해 여기로 와 준 것이었다. '뭘 먹을까', '뭘 할까'하는 우리의 고민과 달리 그녀는 IT 개발자로서 진로에 대한 번민이 많았다. 앳된 사회 초년생은 업계 최고 회사로부터 받은 스카우트 제의에 불안함이 앞선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직 부모님께 말씀 못 드렸어.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 맘이 편치 않아..."  



원래 건강이 좋지 않던 어머니, 해가 갈수록 기력이 약해지는 아버지를 두고 미국 서부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는 효녀다. 


채식주의자인 그녀는 동물을 사랑한다. 그래서 어떤 동물을 만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녀의 손길에 동물들은 편안해 보였다. 그럴 때면 저니는 유난히 동물을, 특히 개를 좋아하는 그녀의 여동생이 떠오른다. 


"내 동생도 동물을 엄청 좋아하지. 한 번은 덩치 큰 개를 데려왔는데 난리도 아녔어. 서랍장 하나를 아작 낸 것도 모자라 문을 어찌 열었는지 냉장고 속 수박 한 통을 다 먹어치운 거야. 그게 동기였는지 애견 핸들러 과정을 수료하고 한 번은 대회에 나가 상도 타고 그랬었어." 



휴가를 맞춰 함께 왔다는 사촌 오빠 필(Phil)은 일진이 나쁘다. 그의 수화물은 이틀씩이나 늦게 도착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안에 든 옷가지들이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고 한숨만 푹 쉰다. 게다가 여행 내내 컨디션 저조로 고생이 말이 아니다. 하루 종일 숙소에 누워 있던 그가 딱해 스테이시는 따듯한 생강차를 만들어 주었다. 홀짝홀짝 마시는 그 모습이 애처롭다. 


여행 끝 무렵에 기운을 차린 필. 듬직하고 진지할 것만 같은 그가 한 번씩 선보이는 레드넥 흉내를 내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4박 5일이란 시간이 금세 흐르고 사촌 남매는 우릴 위해 고민한 흔적을 내놓았다. 미국에서의 자전거 여행 루트를 짜 준 것이다. 드넓은 미국 땅 자신이 없었는데, 현지인 친구들이 있어 이제 든든하다. 고마워 친구들, 미국에서 보자고!    



오뚝 세운 달걀처럼


기다리던 우프 소식은 하나도 없다. 아무래도 다음 나라로 이동해야 할 듯하다. 과야킬에서 밤 버스를 타고 수도 키토에 도착한 것은 이른 새벽. 안데스 산맥 중턱, 해발 2800미터에서 맞는 새벽은 차가웠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고산증세. 두통으로 괴로워하는 스테이시를 서둘러 쉬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저니는 마음이 급했다. 오르막 구불길에서도 좀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고 가던 그가 멈춰 선 곳은 구시가지 중심부 어느 오래된 성당 앞. 인터넷이 되는 카페를 골라 아침 식사를 주문하고 자신은 인터넷을 살핀다. 리뉴얼 오픈 이벤트로 정상가의 절반값에 일주일을 묵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남미를 통틀어 역사적으로 가장 잘 보존된 도시라는 키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전망은 밤이고 낮이고 황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편히 쉴 숙소가 보장되니 추운 새벽은 없고 쾌적한 고산 기후를 즐긴다. 살기 좋은 곳으로 사람이 모여 도시를 형성하는구나. 애버리와 필을 키토에서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숙소 앞 자그마한 공원에서 에콰도르의 상징 벌새를 만났다. 분홍꽃에 부리를 박은 모습이 벌새란 이름이 꼭 어울린다. '찰칵' 카메라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새를 계속 응시하며 저니는 궁금증이 일었다.   


"영어로는 왜 허밍버드(hummingbird)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비버드(bee-bird)가 딱인데."



반응 없는 스테이시. 생각이 없는 건지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지 그 말에는 대꾸 않고 기죽은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며칠 전 초등학교 친구들과 했던 전화 통화 말인데요. 여행 중이란 걸 그제야 알았는지 팔자 좋다, 남편 잘 만났다며 부러워도 하고, 돌아와서는 뭐 할 거냐며 걱정해 주기도 하고. 오랜만의 통화라 모두 반가웠는데요, 결혼하는 친구 축의금 좀 대신 내달라고 부탁했더니 톡 쏘는 거 있죠. 부조는 무슨. 사람 노릇도 못 하면서 그러고 돌아다니냐며..." 


"다음 통화 땐 꼭 말해줘. '그러니 친구가 좋은 거지'라고, 알았지?"   



적도. 지구 양극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지구 표면의 점을 이은 선. 

우리의 출발점은 남극도 북극도 아니지만 적도 그 위에 섰다. 그 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나뉘고 물과 바람은 반대 방향으로 돌아 흐른다. 때로는 우리가 하는 일이 그곳에서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건 자신의 탓이 아닐지 모른다. 늘 그래 왔듯 묵묵히 갈 뿐. 어느 곳에서는 보잘 것 없을진 몰라도 또 다른 세상에선 놀랍고 신비로울 수 있다는 사실. 

적도 위 오뚝 세운 달걀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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