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g - T017 판아메리카나, 페루를 달리다 D+325
Travelog
2016.04.17 17:14:51
1766
  • KO

글, 사진 : 저니, 스테이시


다시 함께 달려요      


세계여행을 꿈꾸게 해 준 '오달'과 '내심'.  

우리 여행의 의미인 '오늘을 달리고, 내일을 심는다'의 앞 글자를 따 이름을 지었다. 한 때 살아 있지 않은 것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살아서 온전히 숨을 들으쉬고 내쉬는 이른바 생명에게만 부여할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라고. '오달아, 내심아' 부르며 소중한 존재로 함께하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어느 순간 변했나 보다. 이름 지은 이유를 떠올리며 다시금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 사정은 이렇다. 농장 체험을 앞두고 묵었던 리마의 어느 숙소. 그곳에 자전거를 맡겼다. 


"스테이시, 아무리 실내라지만 박스로 그냥 대충 덮어놓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괜찮을까?"

"건기라서 한동안 비도 안 온다고 하는데 괜찮겠죠 뭐. 누가 훔쳐가지만 않게 잘 묶어 두기나 해요."


이후 한 달이 지나 리마로 돌아왔을 때, 그제야 알았다. 우린 오달이와 내심이를 그냥 내버려둔 것이란 걸. 희뿌연 먼지는 문제도 아니다. 마디마다 녹꽃이 핀 쇠 접합부는 핏빛으로 얼룩졌고, 겨울날 얼어버린 빨래처럼 뻣뻣해진 체인은 어찌 그리 단단히 굳었는지 페달이 돌아가질 않았다. 자전거마저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보관에 너무 소홀했다. 지붕 없는 마당에서 해가 뜨나 비가 오나 우릴 기다렸을 오달과 내심이에게 미안한 맘뿐이다. 굳어버린 체인은 토라져버린 연인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걸레에 묻어 나온 먼지 뭉치는 그간 내뱉었던 우리에 대한 원망처럼 느껴졌다. 반성하는 맘으로 걸레질, 솔질, 기름칠을 순서대로 반복하길 수차례. 체인은 서서히 부드워졌고,  바디는 원래의 맑은 하늘색으로 빛났다. 생기를 되찾은 오달과 내심이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젠 괜찮아요. 다시 함께 달려요. 저니, 스테이시!'






아메리카의 척추, 판아메리카나


리마에서 에콰도르에 이르는 1300km의 구간을 오직 자전거로 달리기로 맘먹고 페달을 밟았다. 안데스를 넘어 우유니 소금 사막에 들어선 그때로부터 석 달 만의 라이딩은 무척 설레었다. 스테이시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스테이시! 자전거 타니깐 좋아? "

"앙앙! 너무 좋아요. 이 길이 알래스카까지 이어진다니... 너무 신기해!"


아메리카 대륙의 최북단 알래스카에서 최남단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를 잇는 자동차 도로. 이름하여 '판아메리카나'. 대륙이 만든 판의 퍼즐은 2만 킬로미터로 뻗어있다. 우리에겐 언감생심이지만, 그 길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 종단을 꿈꾸는 자전거 여행자가 많다. 북을 향해 달리는 우리는 캐나다나 알래스카에서 출발한 열성 자전거 여행자를 종종 만난다. 그들의 목표는 확고하다. 자전거만으로 그 긴 여정을 해낸다는 것. 단순히 이동수단으로써의 자전거 여행을 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그들의 순수한 목적과 열정에 감탄한다. 자전거 여행, 지구 위를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두 바퀴를 굴려 이동해 간다는 것. 정말 매력적이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땀, 마셔도 마셔도 끊임없이 찾아는 갈증, 엉덩이로 느껴지는 오묘한 고통, 허벅지에 전해오는 근육의 아우성, 미칠 듯이 빨려 드는 내리막의 속도감. 달리다 지쳐 쉬는 곳에선 새로운 경험이 기다린다. '2008년 해남 땅끝마을'을 시작으로 그 가슴 벅찬 무언가에 취해 끝내 세계 여행길에 오른 우리. 하지만 자전거로만 이동하기에는 세상은 넓고도 넓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달리고 싶을 때 달리기.   


건조하고 황량한 분위기의 리마. 시가지를 벗어나자마자, 도시를 받치고 있던 모래사막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엔 태평양이, 오른쪽엔 모래 언덕이, 좀 더 오른쪽엔 모래 평야가 이어졌다. 건물 10층 높이는 될 것 같은 바다 위 모래 절벽은 아주 단단해 보였다. '후~'하고 불면 날아갈 듯한 모래 알갱이들이 세월에 쌓이면 이토록 거대한 절벽을 이루기도 하는구나. 스테이시는 감탄에 잠겼다. 


"저 모래 절벽을 세월에 비하자면, 우리네 인생은 몇 센티라도 될까 모르겠어요"

"짧은 인생이야. 그러니까 하루하루 후회 없이 날 사랑해줘야겠지?!" 


햇살에 부딪쳐 반짝이는 푸른 바다. 그 위의 모래 언덕길엔 나무 하나 없지만 씽씽 자전거는 잘 나간다. 페달을 밟는 족족 가속도가 붙어 휘파람이 절로 난다. 게다가 바람도 뒤에서 밀어주니 언덕길도 문제없다. 달릴 땐 몰랐는데 나중에 찍어놓은 사진과 영상을 보니 위험한 길이었다. 1미터도 안 되는 도로 옆은 낭떠러지 위를 겁도 없이 잘도 달렸구나.

오랜만에 모든 짐을 싣고 달리는 터라 힘들 법도 한데 기운이 넘친다. 어느샌가 스테이시는 수평선으로 닿아 조금 한 점으로 보일만큼 앞서 갔다. 


"여보~! 같이 가~!"


문득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에 설치된 표지판이 떠오른다. '아시안하이웨이 AH1'. 육로로 북녘을 거쳐 유라시아를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정치적인 문제로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졌지만, 그 세월은 고작 70년에 불과하다. 북한과 남한은 수천 년 같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사람들의 생김새, 언어, 문화, 기질 등이 모두 같은데 분단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전거 전용도로      


검은 아스팔트와 건조한 사막 위를 달리길 며칠 째. 바닷가에서 불던 순풍은 모래사막에서 먼지폭풍을 일으켰고 마주오는 대형트럭은 맞바람을 만들어 시야가 흐려졌다. 그럴 때마다 멈춰 설 수밖에 없었고 시간은 점점 지체되었다. 게다가 저 멀리 선 도로 공사까지 하고 있었다. 


"스테이시! 망했다. 오늘 목표한 거리는 힘들겠는걸..."


그런데 그건 도로 확장 공사였고, 건너편 도로엔 차량통행을 막아 놓은 새 도로가 펼쳐졌다. 뻥 뚫린 그 도로 망설임 없이 들어섰다. 각각 차선 하나씩을 차지하고선 대화까지 나눠가며 신나게 달린다. 속도계는 28km를 꾸준히 가리키고 있었다. 언젠가 공사가 끝나면 차들에게 이 도로를 내어 주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자전거 전용도로다. 이대로 에콰도르까지 갔으면 좋으련만. 


서로의 컨디션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지만 주로 스테이시가 앞서 달린다. 그러면 저니는 뒤에서 그녀가 담긴 풍경을 눈에 담는다. 멋진 풍경 속에 있는 그녀의 모습이 좋다. 기분이 좋아 팔꿈치를 얄랑거리거나 페달을 힘차게 밟으려고 엉덩이를 들썩한다거나, 도저히 페달질 할 수 없어 핸들바를 잡고 끌어야 하는 이른바 '끌바'로 뒤처질 때도. 오로지 자신만이 기억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화 속 주인공이 된다. 


한 동안은 큰 도시는 없고 작은 시골마을을 거점으로 하루하루 이동을 한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가게 하나 사람 한 명 볼 수 없던 적도 있다. 간혹 어디선가 불쑥 개들이 나타날 때도 있었지만 환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우리에게서 좀 다른 냄새가 났던지 미친 듯이 달려오거나 지져대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강한 경계를 보였다. 해 질 녘에 마을에 닿을 때면 하루의 피로를 풀 숙소를 찾는다. 시골마을 페루인들은 외지인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와 준 듯하다. 하지만 밤에는 위험하니 나다니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펠리그로소(peligroso)가 위험하단 뜻이구나. 공부가 되고 있어요. 언어를 생활에서 배우니까 머리에 쏙쏙 들어와요 하하"      

"위험하다잖아, 늘 조심해! 꾸이다도(cuidado)" 






코를 막아라! 침보떼


판아메리카를 따라 난 크고 작은 마을들. 저 멀리 마을이 있음을 알아채는 건 눈이 아니라 코가 먼저다. 도로 좌우로 널린 쓰레기 무덤들. 찢긴 비닐봉지들은 바람에 풀썩거릴 때마다 고얀 냄새를 풍긴다. 인근 도시에서 나온 쓰레기를 주변 마을 외곽에 버리는 걸까. 아니었다. 도시에 다다르니 그 규모만큼이나 큰 쓰레기장이 입구에 펼쳐졌다. 특히 해안가에 위치한 '침보떼(Chimbote)'에서는 생선 냄새까지 뒤섞여 코를 막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쓰레기 더미 사이를 오가며 뭔가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망태기와 집게를 하나씩 든 그들. 나뒹구는 비닐 속을 뒤적거리며 건져 올리는 건 알루미늄 캔인 듯. 눈빛이 마주칠 때면 머쓱하기도 하지만 늘 하던 대로 올라(hola=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넨다. 우리나라 폐지를 줍는 노인은 그들에 비하면 양반이란 생각도 든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미국이란 나라에서도 굶는 아이가 많다고 하니, 과연 잘 살고 못 살고 누가 낫고 못한지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보고 싶지 않아서 보지 않은 것들, 알고 싶지 않아서 몰랐던 것들에 대한 생각이 늘어간다.       

리마-에콰도르 국경을 달리는 이번 여정의 중간지점 침보떼. 사나흘 쉬어가기로 했다. 숙소를 찾아 시내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거리는 활력이 넘쳤다. 페루 수산 가공업의 75% 이상이 이곳에서 이뤄진다고 하는 이곳. 부두엔 고깃배들이 수십수백 척이 무리 지어 있었고 해변가 주거지 사이로는 생선 가공 공장이 심심찮게 보였다. 여행 중 간편해서 즐겨 먹는 참치 통조림 브랜드도 눈에 띈다.  

창밖으로 태평양과 고깃배가 보이는 숙소에서 사흘을 쉬면서 바이올린 연습도 하였다. 널찍한 옥상은 빨래 말리기에 좋았고 저니에겐 담배피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3성급 호텔이란 간판이 무색할 정도로 가격이 정말 좋았다.



페루 숙소 가격대별 정리 


밤에 위험하다는 현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캠핑은 하지 않고 줄곧 숙소에 묵었는데 저렴한 가격이 큰 몫을 했다. 1박에 35솔(한화 12,000원가량). 뉴질랜드나 호주의 캠핑장보다도 낮은 수준. '오스페다헤(Hospedaje)'라고 표시된 곳이 대개 가격이 낮았는데 현지인이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물론 가격이 싼 만큼 큰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자전거 여행자에겐 호사라고 느껴질 정도.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가격대별 차이점을 정리해 보았다. 


25솔짜리(약 9,000원) - 찬물샤워, 방이 아주 깨끗하진 않다. 이불이 없다.


35솔짜리(약 12,000원) - 제한적인 뜨거운 샤워(시간제한이 있거나 전기두차라고 해서 전기로 물을 데우는 방식), 샤워 커튼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개인 화장실이 있지만 변기 뚜껑이 없다. 왜 없을까....? 이불 있고 방은 깨끗하다. 가끔 인터넷이 되는 경우가 있다.


40솔짜리(약 14,000원) - 온수 샤워(아! 좋구나!), 개인 화장실이며 당연히 변기 뚜껑이 있다. 이게 뭐라고 문명생활을 하는 느낌이다. 좋구나!), 창문이 큰 밝은 방을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이 된다.


60솔짜리(약 22,000원) - 모든 혜택, 게다가 정원이 있다. 기분이 좋다! 가끔 주방사용 가능한 경우도 있다.



하루는 물고기를 잡아보겠다고 저니가 숙소를 나섰다. 길 건너 제방에서 손낚시를 하고 계신 어르신을 발견하곤 비위 좋게 미끼를 얻는다. 바위에 찰싹 달라붙은 따개비 위로 파도가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낚싯줄을 던진지 서너 번 만에 손바닥 만한 물고기를 잡았다. 침보테 해변엔 물고기가 정말 많나 보다. 아껴두었던 한국 라면에 물을 넉넉히 붓고 생선탕을 끓였는데 역시 비린 생선 맛이 났다. 수렵채집 생활을 맛 본 하루.  


'스테이시! 푹~ 쉬었으면 다시 떠나 볼까'






청춘 4인방


리마를 떠나 자전거를 달린지 2주째. 단련이 될 만도 한데 날이 더할수록 휴식 시간은 더 길어만 간다. 아직 젊다고 느끼지만 우리 몸은 그렇지 않나 보다. 30대 후반이면 아직은 한창인 거 같은데 하루하루 버거운 게 느껴진다. 이제 몸을 아끼고 가꿔야 할 때인가 보다. 평소에 하던 몸풀기 체조에 더욱 열을 올린다. 고개를 좌로 우로, 손목을 풀어주고, 허리도 돌려준다. 지친 세포 하나하나에게 오늘 하루를 부탁하며 인사를 나누는 시간.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지 않으면 세포들은 고통으로 시위한다. 


이따금 방향이 반대인 외국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난다. 이 구간은 특별히 관광거리도 없어 여행자도 보기가 쉽지 않은데, 한참을 탄 보람이 있다. 어디서 시작했고 얼마나 달렸는지 어디까지 가는지를 묻고 숙소 정보며 길 정보를 교환하고 나면 또 파이팅을 외치며 각자의 길을 이어간다. 그들에겐 과거였고 우리에게 미래가 될 남은 길들은 쭉 평지. 마음이 가볍다. 


속도 기록계가 3,000킬로미터를 기록하였다. 길 위에 선지도 300여 일이면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도 볼 법한데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다 드디어 만났다. 하나도 아닌 넷을 한꺼번에 만나다니 무척 기뻤다. 바로 '한국외대 만리행'이라는 자전거 동아리 4인방이었다. 그들이 자전거를 꾸려 출발한 곳은 에콰도르.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여행을 마쳐야 하기에 리마까지만 자전거를 타고 나머지는 배낭여행을 한단다. 너무 반갑고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데 같은 자전거 여행자로서 줄 수 있는 것은 힘찬 응원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참 큰 것을 남겼다. 청춘. 탱글탱글한 피부에서, 낭랑한 목소리에서, 땀으로 범벅되고 지쳐있지만 또렷한 눈동자는 젊음이 넘쳤다. 늙어가는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친구들, 다음에 한 번 더 부탁해요~ 그땐 한국에서!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生)의 찬미(讚美)를 듣는다.'

* 민태원, <청춘예찬> 가운데 






저니의 걱정 


과일을 얹은 조각 피자가 맛났던 뜨루히요(Trujillo). 하룻밤을 편히 묵고 여유로운 하루가 예상되는 다음날. 숙소 주인장의 추천에 따라 후안차코(Huanchaco) 해변을 들렀다 가려고 팬아메리카에서 방향을 살짝 틀었다.  유네스코 표시판이 수차례 눈에 들어왔다. 치무(Chimu) 왕국의 수도 찬찬(Chanchan) 유적이었다. 페루 지폐 20솔 뒷면을 장식한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만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15세기 잉카제국에 정복당하기 전까지 아메리카 대륙 역사상 가장 큰 도시였다는 찬찬은 흙으로 형성된 도시인만큼 훼손이 많이 되어 복원작업이 어렵다고 한다. 판아메리카나 도로 주변으로 수 키로 구간이 유적지 복원작업이 이뤄지고 있었고,  그중 상태가 양호한 일부분만을 관광객에게 개방한 듯했다. 벽면에 조각된 그림이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주로 물고기와 바다새였다. 역사적 가치에 문외한이긴 하나,  훼손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큰 곳임은 분명한 가보다. 그나저나 비바람에 씻겨 흔적조차 희미한 진흙 건물을 무슨 수로 복원하는 걸까? 거참 신기하네.


후안 차코는 해변보다는 예쁜 숙소와 맛있는 해산물 식당으로 유명한 듯하다. 아직 점심 먹기엔 이른 시간, 카페에 들렀다. 생선 냄새 없는 해변을 음미하며 구수한 커피를 홀짝거리니 호화 여행을 하고 있는 듯했다. 착각에 빠진 스테이시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는 저니.  


"당신은 여행을 왜 해?"

"돈 쓰려고요. 그럭저럭 벌고 또 그럭저럭 썼지만 정작 가치 있게 썼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는 정말 제대로 잘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는 예전에 했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해보고 있었다.


'우리는 왜 돈을 버는 걸까?'

'산다는 건 뭘까?'  



돈을 벌면 한국인은 집을 사고, 중국인은 먹는데 쓰고, 프랑스인은 여행을 한다고 한다. 남미에서 만난 여행자 중에 특히 프랑스인이 많긴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행은 삶의 한 부분으로, 여행은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라 삶이 여행이자 여행이 삶이었다.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돈. 그것은 삶의 목적이 아닌 필요의 수단임을 프랑스인은 일찍이 깨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맛을 알아버린 스테이시. 평생 여행하며 살자고 하면 어쩌지' 

- 저니의 걱정     






모래밭에 사탕수수 


후앙카요를 떠날 시간. 해안도로냐 왔던 길을 돌아가느냐를 두고 고민이 생겼다. 당연히 해안 도로가 좋겠지만 지도상에 아주 얇게 그려진 그 길은 비포장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 길을 고집하는 스테이시에게서 사전 다짐을 받아 두어야 했다.   


"암만 해도 모래길 같은데 괜찮겠어?"

"일단 가보면 안돼요? 난 바다 끼고 달리는 게 제일 좋단말예요"


포장도로로 미끼를 던진 모래길은 이내 본색을 드러냈다. 어쩐지 차가 별로 안 다니더라니. 완전 망했다. 한 시간을 달린 거리가 고작 5km. 어차피 늦어진 하루, 천천히 쉬며 가자. 풍경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다가간 모래 해변. 빨간 꼬마 게들이 인기척에 놀라 제 집으로 숨느라 난리가 났다. 식은 피자로 간단히 먹고 나서 조용히 게들을 기다려 보았다. 하나 둘 움직임이 포착됐다. 매우 조심스러운 듯 구멍 위로 집게발을 빼꼼 내밀어 분위기를 살핀 다음 천천히 느린 걸음을 옮긴다. 뭘 하나 봤더니 쓸려오는 파도를 피해 새 집을 짓고 있었다. 하루에 몇 채나 짓는 걸까? 


게 구멍 구경을 마치고 다시 한 시간을 달렸다. 어느새 사탕수수 밭으로 둘러싸였고, 언제부터였는지 탕탕탕 튀는 돌길을 달리고 있었다. 엉덩이 부서지겠다고 앓는 소릴 하는 저니. 자전거를 세우고 판판한 곳을 골라 앉더니 다시 지도를 살핀다. 가던 길이 끝이 나야 마을이 나오고 다시 판아메리카나로 이어지는 형국이었다. 못해도 두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스테이시, 사탕수수 먹어볼래?" 


호신용 칼을 펴 들고 밭으로 들어가더니 모양 좋게 한 줄기를 잘라왔다. 아직 여물지 않아 수수대가 가늘다. 아무 맛도 나지 않고 풀내음만 풍겼다. 마을이 멀지 않았으니 어린 사탕수수의 풋풋함을 즐기며 한동안 자전거를 끌었다. 마을이 가까운가 보다. 사람이 다닌다. 우릴 지나는 다양한 행렬들. 사탕수수를 가득 실은 트럭, 읍내로 향하는 툭툭이, 할아버지와 아이를 태운 당나귀 수레, 먼지를 일으키고 도망가는 오토바이... 이 모두가 페루의 시골 풍경이었다. 탕탕탕~ 여전히 엉덩이는 아파오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손인사와 미소로 화답하는 페루인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다행히도 우회도로에 들어서자 아스팔트가 나왔고 길 사이로 수로가 보였다. 농사란 물 없이는 못 하는 법. 사람도 식물도 물만 있으면 그래도 사는구나 싶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다음 도시 치클라요(Chiclayo)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장장 200여 킬로미터 구간. 척박한 땅에 수로를 놓아 물을 대고, 사막을 개간하여 밭을 늘려가고 있었다. 출근하는 아침이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도로 가에 버스가 늘어 서고 무더기로 쏟아져 내린 사람들은 밭으로 향한다. 도시락 담긴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며 걷는 그들의 발걸음이 굉장히 힘차게 느껴졌다. 황량한 땅을 쓸모 있게 바꾸는 인간의 지혜와 그 규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이 거대 자본의 힘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스테이시! 오늘 저녁은 찐 감자에 빠넬라, 그리고 지역맥주 뜨루히요 어때?"

"암요, 좋고 말고요!"


*빠넬라(Panela) : 사탕수수 원액을 끓여 수분을 증발시켜 얻은 고체 상태의 당 제품. 사탕수수 본연의 필수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이 남아있다. 빠넬라를 정제, 표백 가공한 것이 백설탕이다.    






숭고한 작업  


남미에선 휴대용 부탄가스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부분 장기 여행자는 알코올버너를 이용하는 편이지만 가스버너만큼 편리한 것도 없다. 하지만 가스를 못 구하면 무용지물. 페루 북부에서 제일 큰 도시 치클라요(Chiclayo). 시장을 돌며 샅샅이 뒤졌다. 캠핑용 가스를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곧 바닥날 가스통을 가져가서 직접 보여주며 물어보는 편이 빨랐다. 그런 물건은 없다는 대답을 듣길 수차례.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 백화점 앞에서 라이터 가스를 충전해주는 장인을 발견했다. 혹시나 싶어 물어보았다.


"아저씨, 혹시 이런 가스도 파시나요?" 

"흠... 그 통에다가 충전은 해 줄 수 있지. 오천원이야"



가격 동의가 이뤄지고 숭고한 작업은 시작됐다. 25년간 같은 일을 해온 그는 명실공히 장인이었다. '라이터 가스' 주입구에 침을 몇 번 바르고 작은 고무를 끼워 넣고 우리가 가져온 통을 살포시 연결하였다. 누르는 듯 돌리는 듯 우는 아이 달래듯이 아주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몇 번이나 고무를 교체해가며 그 과정을 반복하더니 충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모습이 너무 진귀하고 멋져 보여  '마에스트로(장인)'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꽉 찬 가스통을 흔들어 보며 장인도 우리도 기쁘게 웃었다.   





페루 100일


모래 언덕과 사탕수수 그리고 계속되는 평지. 오늘 달린 길인지 어제 달린 길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이쯤 되면 그리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 페루에서 만난 오르막은 좀 달랐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급경사였는데도 막상 오르니 힘이 별로 안 든 경험이 있다. 내리막에서 올려다본 탓에 오르막으로 보였던 것뿐 실제로 평지였던 것. 또 다른 경우는 실망스러운 내리막. 신나게 내려갈 것을 기대하고 헉헉거리며 올랐는데 언덕 너머로 평지가 펼쳐졌다. 한숨이 나지만 그 길을 달리다 보면 어김없이 내리막은 나오고 그땐 또 좋다고 헤벌쭉 거리는 우리. 너무 단순한가? 사는 게 그렇지 뭐.


신나는 내리막과 힘든 오르막, 

그 사이사이를 잇는 지리한 평지. 

우리의 여행은 그 모든 순간순간을 이은 길. 

쉬어갈지언정 포기하고 싶지 않다. 


3주 동안 1300km를 달려 페루 마지막 마을 사루미야(Zarumilla)에 도착했다. 다음날엔 에콰도르 국경을 넘는다. 커피농장체험으로 길어져 예상보다 훨씬 오래 있게 되었던 페루. 지난 100일간의 일들이 떠올랐다. 이 먼 곳 페루까지 찾아와 추억을 만들어 준 바이올린 선생님 리나 씨, 페루의 커피를 알게 해 준 농장 호스트 아비엘(Abiel)과 라 메르세드(La Merced) 친구들, 늘 환한 미소와 친절을 베풀어 주던 현지인들과 길 위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들. 모두 그립다.  


우리는 '오늘을 달리고, 내일을 심는다.'

길 위에서 또 만나요. 우리.

굿바이! 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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