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g - T015 리나와 함께한 페루 D+235
Travelog
2015.11.12 11:34:21
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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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저니, 스테이시


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가


티티카카의 아침은 상쾌하였다. 간밤에 또 한 번 크게 다툰 저니와 스테이시. 아침식사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둘 사이야 어찌됐든 리나 씨의 여행마저 망칠 순 없어서였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친 후 저니가 먼저 자리를 뜨고 여자 둘은 마주 앉았다. 긴 망설임 끝에 말문을 연 스테이시. 별 것 아닌 말에도 괜히 짜증을 내고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신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화해의  지난밤. 먼저 손을 내민 저니에게 어떤 경우에도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해버렸다. 한없이 부끄럽고 후회되었다.


"얼마나 답답하면 그랬겠어요. 언닌 잘못 없어요"


리나 씨의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스스로 만든 틀에 갇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했다. 그토록 답답했던 이유도 이제 좀 알 것 같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여행인가, 남편의 여행인가

내 인생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목적을 위해 배우자를 수단으로 삼은 건 아니었나


답은 나왔다. 귀국은 아직 이르다. 갈 테면 혼자 가라지. 영문을 모르는 저니는 갑자기 달라진 그녀의 태도에 꽤나 놀란 눈치다. 그 후에도 스테이시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우로스에선 안 울었소


"푸노 푸노 푸~우~노~"


버스 회사 수 만큼이나 다양한 외침이 터미널을 울린다. 볼리비아는 태양의 섬, 페루는 갈대섬 우로스(Uros).


페루 땅에 들어서자 풍성함이 더해갔다. 평평한 길가로 갖가지 곡식이 익어가고 마을 노점에 앉은 사람들은 느긋해 보였다. 멀리 다시 호수가 보이고 푸노(Puno)에 도착했다.


마중 온 가이드를 따라 배에 올랐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인터넷에서 본 사진 속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갈대 바지선이 초가집을 싣고 물 위에 둥둥 떠있다. 전통 복장을 한 여인네들이 한 줄로 서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따듯한 환영 속에 섬으로 입장하였다. 조심스레 한 발 디뎠다. 푹신한 것이 쑤욱하고 빠질 것 같았는데 제법 탄탄하다.


꽤 젊어 보이는 한 남자. 이곳의 대통령이란다. 그가 갈대섬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여 주었다. 말을 못 알아 들어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이해될 정도의 쉬운 설명이었고, 필요 이상의 권위나 위엄은 없었다.


한쪽에서는 기념품을 파느라 분주했다. 저만치 물러서서 구경하고 있는데 말을 갓 뗀 코찔찔이 꼬마 아가씨가 알파카 인형을 내민다. 깜찍한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더니 결국 스테이시는 그 인형을 샀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니는 아이의 사진을 찍어 부모에게 선물했다. 부모는 사진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동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배에 오르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맑고 깨끗한 호수와 갈대의 잔영, 그리고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 인간은 참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구나. 저 멀리 푸노의 야경을 등대 삼아 뭍으로 나왔다.




스승의 은혜는 어려워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 다른 도시와는 확연히 달랐다. 스페인 정복자도 잉카의 모든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틈새라곤 찾아보기 힘든 빽빽한 자갈길, 정교하게 쌓아 올린 돌담집,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구시가지를 걷는 것만으로도 잉카인의 숨결이 느껴졌다.


마추픽추를 향한 여정은 다채로웠다.


우선 살리나스(Salinas).

안데스 산자락의 고원지대. 신나게 달리던 차가 굽이진 길에 멈춰 섰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놀라운 광경. 살리나스 염전. 무논 위에 해가 비추고 논둑에 소금 꽃이 폈다. 수백의 자그마한 다락논. 황토물 든 누더기 옷이 산비탈에 걸쳤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잉카의 후예들은 물꼬를 보느라 바쁜 걸음을 옮겼다.


다음은 모라이(Moray) 유적.

가는 길 내내 농경지와 초원이 이어진다. 해발 3,000m 고지대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풍요롭다. 잉카 농업시험장인 모라이(Moray) 유적. 둥근 원중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의 온도차는 5도. 작물을 우선 가장 낮은 곳에 심은 다음 점차 높은 곳으로 옮겨 심어 고산 기후에 적응하도록 했다고 한다. '불리한 환경조건에서도 과학영농이 꽃 핀다'는 생각에 스테이시 입가엔 미소가 띄었다.


그리고 도착한 작은 마을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 마추픽추행 열차를 탔다. 그간 보았던 낡고 허름한 차들과는 너무 달랐다. 외관도 내부도 무척 깔끔하고 깨끗하였다. 독특한 유리천장은 산새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이색 열차 안에서 스승의 날을 맞았다.


“리나 선생님, 여러 가지로 정말 감사드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스승의 은혜’ 곡 좀 연습해둘 걸 그랬어요. 헤헷”


말이 길면 실수를 하는 법. 저니의 그 한마디에 영감을 얻어 단숨에 악보를 완성한 스승은 아낌없는 조언과 격려를 잊지 않았다.


“오늘 다 외워서 이따 밤에 연주해주세요 호호"


계획에도 없던 바이올린 연습을 하게 됐다. 두 제자는 악보를 외우면서 다짐했다. 하루 만에 해내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나 남은 시간 동안 하는데 까지 해보자. 부족하더라도 꼭 들려드리고 싶다.


얼추 한 시간이 지나고 마추픽추역에 도착했다. 험준한 계곡 사이로 우루밤바 강이 굽이쳐 흐른다. 물살이 유난히도 거칠다. 초록의 산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마추픽추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이올린을 꺼내 들었다. 2시간 연습 뒤, 스승 앞에 선 두 제자.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활을 켠다. 손과 머리가 따로 논다. 손만 집중하자니 악보가 생각나질 않는다. 스탑 명령과 함께 연주는 레슨으로 바뀌었고 ‘스승의 은혜’는 ‘스승의 민폐’가 돼 버렸다.


‘죄송해요 선생님, 다음엔 제대로 은혜 갚을게요♡’




보일 듯 말듯한 마추픽추


대망의 마추픽추(Machu Picchu).

이른 아침. 셔틀버스를 타려고 길게 늘어선 줄. 무리 사이로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쌀쌀한 공기를 가르며 출발한 버스. 잉카 전통악기 연주가 울리는 가운데 꼬불꼬불 경사길을 엉금엉금 기어 오른다. 

아래쪽에선 공중도시도 이 길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는데 위쪽에선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쫓아오던 침략군을 내려보던 잉카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마추픽추가 바로 지척이다.

저 안쪽에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입구를 지나려는데 직원이 막아선다.


"그거 뭡니까? 악기는 보관소에 맡기세요"


연주는 아니더라도 기념 사진 하나 남기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다. 바이올린을 맡길 수밖에.


안개가 자욱하다. 마추픽추에 이미 들어선 거 같은데 아무 감동이 없다. 일단 이정표를 따라 와이나 픽추(Huayna Picchu)로 향했다. 왕복거리 두 시간. 그 사이 날씨가 좋아질 것을 기대하며 걸음을 옮겼다.


만만치 않은 산길. 가파른 오르막, 수직에 가까운 계단, 그리고 흠뻑 젖은 길에서 미끄러지기 수차례. 더욱 짙어진 안개는 구름이었던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전망대에서 멋진 마추픽추 전경을 기대했었는데 일진이 사나웠다. 바위 밑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비는 멈췄지만 안개는 여전했다. 그만 포기하고 돌아내려 가려는 순간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온통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가운데 유독 한 곳은 안개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짧은 순간 마추픽추의 일부가 보였다. 끈질기게 기다렸던 몇 사람과 더불어 환호성을 질렀다. 쉽게 볼 수 없어서 더욱 특별했던 경험. 


산을 완전히 내려오자 서서히 하늘이 개었고 그제야 알았다. 우리가 서있는 곳이 바로 마추픽추라는 것을. 케추아어로 안부인사를 전했다. 


“마추픽추! 아이얀추?(Machu picchhu! Allillanchu?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요?)”


언제 또 날씨가 바뀔지 몰라 세 사람은 걸음을 서둘렀다. 전경이 잘 보이는 언덕에 올라 태극기를 꺼냈다. 바이올린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대로 충분했다. 사진을 몇 번이고 찍고 또 찍었다.


"안돼요 안돼!”


그저 기분이 좋아서 점프를 하려던 순간. 근처에 있던 관리인이 큰일 날듯이 고함을 지른다. 매년 수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잉카의 아이콘. 아직도 군데군데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소중한 인류의 유산. 잘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꾸이와 개고기


“아레키파~레 키파~레 키파~!!!”


버스 터미널에 또 울려 퍼진다. 열 시간 이상 타는 버스도 몇 번 타니 적응이 된다. 밤새 달려 아레키파(Arequipa)에 도착한 이른 아침. 터미널 앞 주차장에 노란 택시가 즐비하다. 더 이상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소형차 티코(Tico). 녀석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한국을 그리워하다 노랗게 물들어 버린 건 아닌지. 여하튼 반갑다. 그 중 한 대가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 주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자 야간 버스에서 쌓인 피로가 싹 풀렸다. 무작정 거리를 걸어본다. 차분하고 조용한 시내. 백색 도시란 이름 그대로 건물도 거리도 하얗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엔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많아 보였다. 유럽인처럼 보이는 현지인도 많고 쿠스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산책을 하고 나니 슬 배가 고프다. 아레키파엔 멋진 레스토랑과 맛집이 많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현지인들 사이에도 인기가 많다는 페루 전통음식점을 찾았다. 베스트 메뉴는 바로 ‘꾸이(cuy)’. 귀여운 애완동물이 요리가 되어 나온다는 건 상상하기 싫었다.


이윽고 노릇하게 잘 구워진 꾸이 요리가 등장했다. 기름기를 쫙 뺀 앙상한 몸통, 머리 부분은 마치 박쥐 같았다. 거부감과 호기심 사이에서 망설이던 저니는 용기를 냈다. 껍질은 바삭바삭하고 살은 부드러운 게 닭고기 맛에 가깝다. 맛보다는 경험. 단 한 번으로 족하다며 저니는 음식을 남겼다.


오랜 옛날 페루인의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는 꾸이. 여행 중 ‘한국인은 개고기 먹는다며?’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우리로서는 당혹스러웠다. 이들은 자주 한국 식탁에 오르는 메뉴로 생각했던 걸까. 그런데 문득 왜 개고기를 먹게 되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요즘 시대엔 애견인도 많아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지만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인 한국에서 개의 필요성이 적었을지도. 페루에서 꾸이를 먹는 것처럼 하나의 문화이자 개인의 기호로 봐야하지 않을까. 꾸이를 먹지 않는 페루 인도 있을 테니깐.




산타 카탈리나의 소녀들


다음 날.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레슨 수업이 시작되었다. 캐논 변주곡과 고향의 봄 이중주. 숙제가 많다. 악보 외우기, 박자 맞추기, 좋은 소리 내기. 앞으로 힘든 나날이 이어질 것 같다.


불꽃 바이올린 연습에 몰두 중인 저니는 남겨두고 여자 둘만 외출에 나섰다.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Monasterio de Santa Catalina)은 스테이시가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새로운 표현을 쓴 기록적인 곳이다. 수줍은 정원과 앙증맞은 세간. 여성스러운 취향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파란 빛, 하얀 빛, 초록 빛 그리고 햇빛. 고요하고 평온했다. 수녀원에서 살았던 소녀들은 행복했을까.


기대가 컸던 리나 씨도, 아무 기대 없었던 스테이시도 두 시간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어른 여자 스테이시는 생각했다.


'나도 소녀였던 때가 있었는데......

반짝하고 되살아난 아름다운 감정들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다.'


아레키파 마지막 밤.

리나 씨와의 여행을 기념하고픈 맘에 특별히 고급 식당을 골랐다. 그리고 가장 유명하다는 메뉴를 주문했다. 달궈진 돌판에 올려진 다양한 고기. 그 위로 꼬마 깃발이 꽂혀있다. 모양만으로도 재미있는 저녁식사. 육류 접시엔 소고기, 돼지고기, 알파카. 어류 접시엔 송어, 연어, 그리고 아마존 강에 서식하는 담수어 피라루크(Piache, Pirarucu). 저니는 지역 맥주 '아레키페냐(Arequipeña)’로, 리나와 스테이시는 ‘피스코샤워’로 맛을 더했다. 즐거운 대화가 무르익는 동안, 테이블 위 촛불은 시간을 말해주지 않았다.





다 같이 경찰서 갑시다


이카(Ica)를 향해 달리는 버스 안.


“저 핸드폰이 없어진 거 같아요.”


리나 씨의 당황한 목소리였다. 승객은 우릴 포함해  열다섯이 전부. 전화를 걸어보니 전원이 꺼진 상태다. 수상쩍다. 아무래도 누군가 숨긴 것 같은데 모두 모른다고만 한다. 지난번 저니와 스테이시의 가방 도난 사건 때와 같은 상황.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던 그때 한 남자가 일어나 말했다. 대강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도중에 내린 사람도 없고 물건은 틀림없이 차 안에 있습니다. 모두 협조해주세요. 못 찾으면, 다 같이 경찰서 가는 겁니다!”


점잖으면서도 단호함이 느껴지는 어조였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내 물건은 되돌아왔다. 의심은 여전했지만 그걸로 됐다.


'도움 주신 분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의 오아시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카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와카치나(Huacachina)로 이동했다. 유명세에 비해 와카치나는 한산했다. 완벽하게 모래로 둘러싸인 오아시스는 흔치 않다고 하는데, 물고기가 사는 건 흔한 일인지 모르겠다. 호숫가에 모인 아이들은 낚시에 물놀이에 신나 보였다. 오아시스는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우리는 숙소 수영장에서 더위를 식혔다. 물놀이는 언제나 즐겁다.


"우리 바이올린 연습해야죠”


이 소리는 언제나 괴롭다. 결코 우리는 덜 외운 악보가 눈에 아른거려 잠을 설치는 열혈 모범생은 아니다. 방학 끝날 무렵 밀려드는 방학숙제를 하는 평범한 학생. 바로 우리다. 하지만 원정 레슨이 이제 앞으로 사흘 밖에 안 남았다. 각자의 파트를 열심히 외워 가며 끝까지 성의를 보이려고 노력했다. 


고대하던 사막 투어 액티비티!

사막용으로 개량된 특수 지프차 버기카(buggy car). 굉음과 함께 달리기 시작하자 차 안에서는 환성과 탄호성이 울렸다. 엄청나게 높아 보이던 모래언덕을 거침없이 올랐고, 또 아찔한 급경사 내리막도 사정없이 내달렸다. 웬만한 오지 산길에도 끄떡없을 것 같다.


길이 없는 사막에서는 달리는 곳이 곧 길이다. 운전사 맘대로 길을 만들더니 어느 사구 꼭대기에서 멈춰 섰다. 샌드 보딩을 즐길 순서다. 서핑과 달리 잘 미끄러지라고 초 칠을 한다. 가이드가 시범을 보였고 하나 둘 모래 썰매를 탔다. 두려움이란 이름의 보드를 가슴에 껴안고 모래에 엎드렸다. 짜릿한 속도감에 무서움은 저만치 도망갔다. 막히지도 않은 가슴이 펑 뚫렸다. 시원해도 너무 시원한 맛에 스테이시는 신발 벗겨지는 줄도 몰랐다. 감을 잡게 되니 다음번에는 좀 더 스릴을 즐길 수 있었다. 언젠가 책을 한 권 낸다면 이렇게 쓸지도 모르겠다.


화가 치밀고 분노가 끓어오르나요

다음의 순서로 여행을 해보세요.

페루에서의 짜릿한 샌드 보딩

아르헨티나에서의 가슴 뻥 이과수 폭포

뉴질랜드에서 쫄깃한 스카이 다이빙


투어의 마지막 코스.

모래언덕에 올라서서 지는 해를 바라봤다. 노을녁 오아시스는 판타지 영화의 한 배경처럼 멋졌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우리 삶에도 오아시스가 있겠지. 저절로 만들어지는 건 없다. 삶도 오아시스도 각자 스스로의 몫.





작별은 재회의 다른 이름


넘어가는 해는 태평양을 밝히고 그 바다 끝자락 그리운 고국에 떠오른다. 리나 씨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 셋은 함께 여행을 하였고  그중 한 사람을 먼저 보낼 날이 왔다.


이번 여행의 종착역이자, 새로운 여행의 출발역 리마(Lima). 도시에 어둠이 내리고 로맨티시스트 저니는 케이크와 와인을 준비했다. 케이크엔 세 개의 초를 꽂았다.


하나는 살아계셨으면 쉰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어머니를 위해.

또 하나는 오늘 생일을 맞는 스테이시의 오빠를 위해.

마지막 하나는 내일 떠나지만 곧 다시 만날 리나 씨를 위해.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무사히 여기까지 온 서로를 바라보며 고마움을 나눴다.  또다시 각자의 길에 서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남미의 추억을 간직한 채.


‘리나 선생님. 정말 즐거웠고 미안했고 고마웠어요’


덧붙임. 리나와 함께한 미국, 유럽, 아시아를 꿈꿔봅니다. 

생생히 그리고 간절히 꿈꾸면 반드시 이룰 수 있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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