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g - T014 리나와 함께한 볼리비아 D+222
Travelog
2015.10.23 02:03:25
3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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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저니, 스테이시


산티아고 한 달 살기를 하던 때.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바이올린 선생님인 리나 씨로부터 날아 온 메시지. 


"5월이면 어디쯤 계세요? 저 남미 가려고요. 한 달 휴가 낼 거예요" 


눈이 커졌다. 가슴이 뛰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이 멀리까지 우릴 보러 와주신다니 그것도 한 달 씩이나! 


“스테이시, 어서 여행 계획 짜자!” 

“그것도 그거지만, 바이올린  연습해야겠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제대로 된 곡 하나 마스터해 선생님 앞에서 멋지게 연주해 보이는 건데, 그동안 연습을  게을리한 것이 후회되었다. 앞으로 석 달. 기초부터 착실히 연습해 두자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너무 들뜬 나머지 마음만 앞섰다. 




삶의 지도를 바꿔놓은 바이올린


3년 전, 백혈병으로 어머니를 하늘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저니. 

자책과 슬픔에 빠져 있던 그에게 어디선가 들려온 바이올린 선율은 그의 마음을 달래 주었고, 점점 바이올린에 빠져들었다. 

몇 달이 흐른 뒤. 마침내 망설였던 세계일주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 준비의 일환으로 참석한 여행작가수업. 교실 옆자리에 앉은 리나 씨. 살면서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바이올린 하신다고요? 저 좀 가르쳐주세요!" 


그렇게 레슨이 시작되었고 스테이시와 함께 꼬박 1년을 배웠다. 그녀의 바이올린 지도는 우리 삶의 지도를 바꿔놓았다. 저니에겐 돌아가신 어머니께 들려주고 싶은 곡이 하나 있다. 아직은 엄두조차 낼 수 없지만 여행 중에도 계속 연습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에 싣고 다니기엔 버거운 짐이지만,  가슴속 비워지지 않는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로는 한참 아래 동생인데도 우리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그간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 때때로 부부싸움 뒤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수업을 이끌어 주던 사람. 그런 그녀가 머나먼 남미까지 날아와 함께 여행을 하고 원정 레슨을 해주겠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살살 부탁해요 선생님


시간은 흘러 그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해발 4,100미터에 위치한 볼리비아 라파스의 엘 알토(El Alto) 국제공항. 입국장을 나오는 리나 씨는 장시간 비행으로,  그리고 고산병으로 다소 피곤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달려가 안으며 폭풍 수다를 늘어놓았다. 우유니로 향하는 내내 우리만 신나게 떠들어댄 것 같다. 리나 씨를 더욱 피곤하게 해서 미안했지만 스페인어로 인한 스트레스는 확실히 풀렸다. 


이번 여행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미니 지프차. 차를 렌트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유니에 두고 온 자전거 운반에 유용할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이용 시 발생하는 시간낭비와 정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전을 즐기는 리나 씨를 고려한 측면이 크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자전거든 지프차든 직접 달려야 맛이다는 우리의 생각에 그녀도 수긍해주었고 급기야 운전면허도 수동으로 업그레이드해왔다. 


라파스를 떠나 10시간을 달려 우유니 소금사막에 도착했다. 자연이 만들어낸 하얀 고속도로. 자전거로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녀에게 차키를 넘기며 당부의 말을 전하는 저니. 


"살살 부탁해요 선생님"


운전대를  넘겨받은 리나 씨의 첫 시동. 부르르 떨던 차는 이내 시동이 꺼져 버렸다. 곧 요령을 터득하고 부드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정표도 속도제한도 없는 하얀 소금 평원을 신나게 가로지르는 레이서. 지프차의 성능이 낮아 약간 아쉽지만, 자가운전으로 달린 우유니, 속이 시원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소금 사막 한 가운데에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자전거 여행자의 잠자리를 보여줄 요량으로 기획한 것. 이미 맹추위의 위력을 실감했던 터라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해왔다. 담요, 부직포, 두꺼운 종이 박스 등등. 하지만 덜 추운 거지 추운 건 마찬가지다. 침낭에 쏙 들어가서 얼굴만 빼곰히 내민 세 사람. 서로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자전거로 왔을 때는 지독히 캄캄해서 별이 눈부시게 잘 보였는데 이번엔 커다란 만월이 밝게 비췄다. 별 대신 하얀 땅을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달빛의 기운을 받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텐트 안으로 햇살의 온기가 퍼지자, 부스스 떨리는 몸을 털고 밖으로 나왔다. 수평선을 넘어가는 만월이 주변을 붉게 물들였다. 그 멋진 풍경에 모두 잠시 넋을 잃고 감상했다. 달도 노을을 만드는구나.. 엉클러 진 머리, 부스스한 얼굴, 거대 선인장을 배경으로 세 명은 나란히 서서 양치질을 하였다. 치카치카. 괜히 또 웃음이 난다.



제 3자의 시선


우유니 사막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향했다. 도로 상황은 좋지 않고, 안데스 고원지대로 들어서니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게다가 지도에도 없는 샛길이 많아 길안내를 맡은 스테이시도 운전사인 리나 씨도 애를 먹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유소가 없다는 것. 보조 기름통을 가득 채워왔지만 자칫 길을 잘 못 들면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이때부터 저니는 길 찾기에 예민했다. 결국 기름이 떨어지고 일이 터졌다. 지도만 찰떡같이 믿고 찾아간 주유소. 그러나 주유소는 흔적 조차 없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 폭발한 저니는 괜히 스테이시에게 화풀이를 했다. 


"왜 상의도 않고 길을 돌아온 거냐고!" 


줄곧 스테이시의 길안내를 못마땅해하더니만 미리 상의하지 않고 마음대로 길을 안내한 탓에 기름을 다 써버렸다는 주장이었다. 


"그게 왜 언니 탓이에요?!" 


어리둥절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는지 리나 씨가 나섰다. 제 3자의 시각은 대체로 객관적이고 대부분 옳다. 스테이시는 저니가 스스로 분을 진정시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남녀가 하나가 되어 같은 길을 간다는 것. 다르기 때문에 서로 상처를 줄  수밖에 없지만 치유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 상처를 될 만한 일을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여자. 둘 사이의 다툼 속에서 아직 싱글인 리나 씨는 부모님이 떠오른다고 했다. 


"부부가 그렇죠 뭐. 안 바뀌던데요?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죠" 


기분이 다소 풀린 저니. 보조 기름통을 가져와 있는 힘껏 호수를 빨아보지만 쉽지 않다. 이미 꼬여 버린 심사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났다. 


"우씨!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결국 페트병을 잘라 주유구에 꽂아 넣고 조금씩 덜어 넣었다. 한바탕 소동을 마치고서 한동안은 모두 말없이 달렸다. 대피소에서 간혹 휘발유를 판다는 소문이 사실이기만을 바라면서 가장 가까운 콜로라도 호수로 향했다. 어둠이 내리고도 한참을 더 달려 도착했다. 계기판에는 빨간 주유 등이 들어왔다. 깜깜한 밤. 기름은 내일 생각하고 일단 쉬어야 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세 사람은 숙소에 들어 가자 바로 뻗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기름 구하기는 의외로 쉽게 끝나버렸다. 숙소 주인장이 바로 기름장수였던 것. 그가 세 사람을 살렸다. 보조통까지 가득 채웠다. 다시 가벼운 맘으로 호수를 구경하였다. 이름처럼 색깔이 붉은 콜로라도 호수(Laguna Colorado). 태양이 높게 떠오를수록 붉은 정도가 강해졌다. 멀리 플라밍고 무리가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좀 더 남쪽으로 이동해 찰비리 호수(Laguna Chalviri)로 갔다. 이곳은 찾을 나름 이유가 있다.


"리나 씨, 수영복 가져왔죠?" 


고대하던 노천온천. 두어 무리의 관광객이 지나가고, 작은 호수는 우리만의 차지가 되었다. 어둠이 내리면 금세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지는 이곳. 모락모락 증기가 피어오르는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추위에 떨어 뭉친 근육이 스르륵 풀렸다. 또한, 사람에게 상처 입은 마음도 상처를 준 마음도 녹아내렸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조바심이 났던 걸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 저니는 그저 하늘만 바라보았다. 


돌아가는 길. 유명한 스톤트리도 보고 신기한 간헐천도 구경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헤디온다 호수(Laguna Hedionda)였다. 야생 플라밍고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도한 걸음걸이. 날아 오를 때 펼쳐진 핑크빛 날개는 참으로 우아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에 올랐다. 그때부터 최악의 길이 이어졌다. 깊숙이 패인 진흙길, 바퀴가 헛도는 모래길, 뾰족한 바위길. 의지와 상관없이 핸들이 돌아가고 사륜구동이 아니라면 엄두조차 낼 수 없던 것도 여러 번. 급기야 펑크가 났다. 다행히 저니는 경험이 있던 터라 금세 타이어를 교체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험한 길을 계속 운전한 리나 씨. 


"길 한번 지독하네요"


남에게 권할 것은 못된다고 덧붙였다. 한동안은 드라이브 생각이 안 날 듯하다. 저니와 교대를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푹 쉬세요, 수고 많았어요 선생님. 어둠의 끝에 라파스로 돌아왔다. 




숨 막히는 라파즈(La Paz) 


라파스(La Paz).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이 도시의 풍경은 숨 막힐 듯 아름답다. 실제로 숨쉬기도 쉽지 않다. 굴곡진 언덕을 따라 레고 블록처럼 빼곡히 들어찬 집들. 가난한 나라지만 순박한 사람들. 이 높은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왠지 짠하다. 남미 어느 도시 보다 가장 기억에 남고 사랑스러운 곳. 


사나흘 일정 중 먼저 달의 계곡을 찾았다. 시내에서 10km 거리에 위치한 희귀한 모양의 뾰족 봉우리들. 오랜 세월 동안 침식을 거치면서 거대한 진흙산은 수십 미터의 첨탑으로 변신하였다. 오르락 내리락 첨탑 사이로 산책을 하며 느긋한 휴일을 즐겼다. 그러고 난 뒤 한적한 쉼터에서 막을 연 바이올린 수업. 먼곳까지 찾아와 준 것도 고마운데 재능기부까지 해준 리나 씨. 고마운 마음을 알기에 열심히 임했다. 그리고 수업 끝엔 선생님의 특별 선물이 있었다. ‘명상(Meditation from Thais, Massenet)’. 아름다운 선율이 첨탑 사이로 고요히 울려 퍼지고 우리는 명상에 잠겼다. 참 고마운 사람.



전혀 무섭지 않은 데스로드


이틑날. 이름 하여 '데스로드(DeathRoad, 죽음의 도로)' 자전거 모험에 올랐다. 숙소를 출발한 투어 차량은 한  시간쯤 후 어느 풍경 좋은 언덕에서 멈췄다. 

우리가 전용 슈트와 안전 장비를 착용하는 동안, 가이드는 차 지붕에서 산악 자전거를 내린 뒤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였다.  


"준비됐나요? 자 갑시다!"


앞장선 가이드를 따라 아스팔트 위로 워밍업이 시작되었다. 구불거리는 내리막에서 가속이 붙고 모두 브레이크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십여 분 후, 드디어 '죽음의 길'에 들어섰다. 맑기만 하던 날씨가 갑자기 변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온통 하얗게 덮은 공기층 때문에 5미터 앞도 볼 수가 없었다. 공포의 낭떠리지도 자욱한 안개에 가려지니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신나는 내리막일 뿐이었다. 브레이크를 잡은 손에 적지 않은 힘이 들어갔다. 


"손목 조심해요, 리나 씨"


저니와 스테이시는 약간 걱정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손목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매년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 속도를 내기보다는 안전에 신경 써야 한다. 조심성 많은 저니가 앞에서 리나 씨를 이끌었고 스테이시가 뒤에서 경호하는 태세로 달렸다. 


"잠시 멈추세요"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모두들 길가에 자전거를 세웠다. 커브길 아래로 트럭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최근 우회도로가 생겨 많진 않지만 이렇게 차들이 지 날 때면 좁은 길에 나란히 서서 길을 내주었다. 안개에 가려져 보이는 것이라고는 울퉁불퉁 돌길과 앞서 달리는  자전거뿐이었다. 낭떠러지에 대한 공포가 없으니 다소 심심한 라이딩이 되었다. 


64km에 이르는 다운힐 라이딩은 단 두 시간 만에 끝이 났다. 숨쉬기가 한결 편하다 했더니 4,600미터에서 시작해 1,200미터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손목부터 풀었다. 쉴 새 없이 브레이크를 잡았더니 손목, 손가락 모두 얼얼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맑게 개었다. 얼굴에는 진흙탕물이 훈장처럼 남았다. 가랑비와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점식식사. 꿀맛이었다. 식사 후 수영도 하며 한가롭게 휴식을 취했다. 돌아가는 길엔 모두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아무쪼록 무사히 마쳐 다행이었다.




티티카카에서 나는 울었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 티티카카를 만나러 떠났다. 

줄곧 황량하던 풍경은 호수마을 코파카바나(Copacabana)에서 끝이 나고 온통 초록의 싱그러움이 넘쳤다. 고요한 호수 위로 고기잡이 배와 유람선이 평화롭게 떠있다. 푸르름과 풍요를 선사하는 티티카카 호수. 자연은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위대하다. 푸른 빛의 호수가 하늘을 비추기라도 하듯 맑은 하늘이 더욱 파랗게 보였다. 


티티카카는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지대에 걸쳐 있다. 전라북도 면적보다 큰 호수엔 크고 작은 섬이 많다.  그중 볼리비아 쪽에서는 달의 섬(Isla de la luna)과 태양의 섬(Isla del Sol)이 대표적이다. 단지 하룻밤만 머물 예정이었기에 가장 크다는 태양의 섬만 가기로 했다. 


우리를 포함한 스무 명 남짓의 승객을 태우고 배는 출발하였다.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일고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스테이시와 리나 씨는 조용히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풍경을 담던 저니는 말로 감상을 늘어놓았다. 맞짱구를 바라는 그에게 스테이시는 '또 시작됐군'하는 투로 말을 뱉어버렸다. 


"우린 조용히 감상하고 싶단 말이에요" 


저니는 입을 닫았다. 하지만 기분이 팍 상했다. 이미 며칠  전부터였다. 말 좀 아끼라는 스테이시의 충고를 따라 나름 자제하느라 애쓰고 있었지만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쭉 참다가 겨우 한 마디 한 걸로 무안을 주다니! 아내가 밉다. 


모두 입을 다문 채 배에서 내렸다. 섬은 동화책에나 나올 듯한 그런 예쁜 시골 마을이었다. 꽃향기를 맡으며 나무 그늘 사이 계단을 올라 뒤를 돌아봤더니 호수 저 멀리 설산이 눈에 들어왔다. 스테이시는 후회되었다. 아까 저니를 동조해줬더라면 마음이 이렇게 불편하진 않을 텐데. 시간이 지나면 풀릴 거라고 여기며 그냥 걸었다. 


흙길을 따라 늘어선 집들과 상점 그리고 식당. 사람 사는 건 차이가 없지만 그곳 만의 앙증맞은 구석이 있어 좋았다. 좁은 산책로에서 알파카를 데리고 있는 어린 소녀를 만났다. 그런데 마실 나온 게 아니라 영업을 나온 것. 사진을 찍자 돈을 달라고 한다. 무표정한 아이에겐 그저 낯선 이방인이 돈벌이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저니는 불쾌했다. 한편, 생계 유지도 힘든 섬에서 가계에 도움이 되려고 길거리로 나온 것이고 생각한 스테이시. 갸륵한 아이에게 동전을 건넸다.


마을을 지나 섬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셋이서 나란히 걸었다. 언덕배기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감자를 캐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등에 업은 아낙을 보고 있자니 옛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도 다 저렇게 컸지.


태양의 섬의 하루가 느릿느릿 저물어갔다. 남쪽 항구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우리는 저만치 앞서 걷는 리나 씨 덕분에 둘만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모처럼 예전으로 돌아가 다정한 이야기를  주고받는구나 하던 찰나, 또 부딪히고 말았다. 그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한마디 한마디 서로에게 가시를 꽂았다. 


"여행 그만 해! 페루 가면 리나 씨 먼저 보내고 우리도 여행 끝내! 그게 서로 좋겠어"


저니는 귀국을 결단했다. 늘 상냥하던 스테이시가 변한 건 여행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먹한 분위 속에 육지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는 두 여인만 보내고 저니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십 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고 시커먼 티티카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부는 닮아간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성향이 아내한테 옮긴 건 아닐까. 이 여행의 종착지가 정작 여기 까지란 말이냐. 답답한 이 심정. 담배 연기 뿜어내듯 날려버릴 순 없을까'




매미와 거목나무


매미와 거목나무


긴 세월을 견뎌내고 막 땅위로 올라온 한 마리의 유충. 올라간 곳은 끝을 알 수 없는 거목. 동이 틀 무렵, 따스한 햇살을 받은 유충은 이내 탈피하며 매미가 되었다. 그리고 배에 힘껏 바람을 넣더니 울어대기 시작한다.


“맴맴맴~, 고통과 슬픔뿐인 지난 세월~”

“맴맴맴~, 외로이 이겨내야 했지~”


시끄러운 매미에게 거목은 말했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귀가 좀 아프구나”

“거목! 왜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거야!”

“이 세상엔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단다. 때가 되면 너도 깨치게 될 거야.”


매미는 거목의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울어댔다. 반나절이 되어서야 지친 매미는 잠잠해졌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자 거목은 아무 말없이 자신의 잎사귀로 매미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한참 울어댄 탓에 목이 마른 매미는 거목의 기둥에 주둥이를 꽂아 수액을 들이켰다. 그리곤 더욱 우렁차게 울어댔다. 매미의 울음소리에 새가 날아들었다.


"위험해! 널 노리는 녀석이야”


다급하게 소리치며 거목은 자신의 가지로 매미를 숨겼다. 


“이봐, 거목. 여기서 시끄럽게 울던 매미 못 봤어?”


거목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거참 이상하군’ 새는 혼잣말을 남기고 산 너머로 사라졌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자 매미가 가지 사이로 나왔다. 


“왜 나를 구해준 거야?”

“넌 겨우 아름다운 세상을 맞으려던 참이었잖아. 너의 힘들었던 지난 시절도 사랑하길 바라.”


매미는  또다시 힘차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오늘도 해가 뜨고 저문다.

매미의 울음은 짧게 끝난다.

오늘도 해가 저물고 또 떠오른다.

사방에 매미가 울어댄다. 

그러나 어제와는 다른 매미. 

하지만 오늘도 아름다운 외침.

꿈이었나. 눈을 비빈 손에 눈물이 묻었다. 

거목에 못질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못을 빼도 못 자국은 남는다. 평생을 아름다운 동행을 약속한 우리.  또다시 눈물이 흐른다.



덧. 리나 선생님 덕분에 도난물품을 대체할 물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게다가 한라산 소주, 불닭볶음면, 한국 라면수프는 정말 오랜만에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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